무엇이든 그럴듯하게 대답해주는 이 기술은 내가 마치 초월적 존재와 대화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두 달 전 라디오 방송에 쓸 원고 때문에 급히 찾아보아야 하는 참고 사항이 있었다. 거의 10년 전에 읽었던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에 언급된 내용이었는데 내 기억에는 바로크 시대에 잠들기 전 거울 앞에서 눈물을 짓는 연습을 하는 유럽의 어떤 관습에 대한 것이었다. 구글로 검색해 보니, 엉뚱한 바로크 시대 가구와 건축물만 잔뜩 검색되거나 눈물짓기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일반론적 언급만 있을 뿐 그 이상의 접근이 어려웠다. Open AI의 플레이그라운드에 물어보기로 했다. *영화 <더 플라이>(1986)에서 과학자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 코딩이 아니라 자연어로 명령을 내리고 있다. 나 : “바로크 시대에 잠들기 전, 거울 앞에서 눈물짓는 연습을 하는 관습에 대해 말해줘” 인공지능 : “18세기 네덜란드에는 크라잉픽처(Crying Pictures)라는 장르가 존재했다. 눈물을 흘리는 자 혹은 자신을 반영하는 그림이었다. 그들은 눈물짓기를 통해 자기 자신이 정화된다고 느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엄격한 교차 검증을 못 하고 이 대답을 덥썩 받아들였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으니 한 번 더 확인이 필요한 탓에 비슷한 내용에 확신이 선 것이다. 인공지능의 대답에 나는 그날 방송에서 바로크 시대를 감정 과잉의 시대라고 평가하며, 잠자기 전 거울 앞에서 눈물짓거나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유행이 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바로크 시대를 감정 과잉으로 평가한 것은 온당했다. 한달 뒤 나는 다시 이 개념에 세세하게 접근하고 싶었다. 나: “바로크 시대에 잠들기 전, 거울 앞에서 눈물짓는 연습을 하는 관습에 대해 말해줘” 인공지능: “그러한 관습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거울 앞에서 눈물짓는 일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훈련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당황해서 다시 물었다. 대답의 임의성을 조금 높여 조정했다. 나: “바로크 시대에 잠들기 전, 거울 앞에서 눈물짓는 연습을 하는 관습에 대해 차근차근 말해줘” 인공지능: “바로크 시대는 과잉의 시대였고 거울을 보고 우는 사람들은 외모에 불만이 있어서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과체중이거나 여드름이 있거나 단순히 원하는 만큼 매력적이지 않아서 우는 것일 수 있다.” 순간 인공지능이 지금 말을 임의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Temperature라는 항목을 통해 단어 조합의 임의성을 높이거나 줄일 수 있긴 하지만 그 수치를 낮춘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검증된 진실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 질문자가 한 질문에 들어있는 프레임이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적당히 괜찮은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언어학습을 하다 보니, 위와 같은 특수한 질문에는 절대적 부정이나 일반적인 답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임의성을 높이고 차근차근 대답하라는 논리적 절차성을 요구하니 전혀 되지도 않는 넘겨짚기 시도를 하는 것이다. 결국 <풍속의 역사>를 샅샅이 뒤져 해당 내용을 확인했다. 분명 바로크 시대의 감정 과잉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크라잉픽처(Crying Pictures)라는 장르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었고, 이후에도 구글검색으로도 찾지 못했다. 나는 사람같이 말하는 인공지능 앞에 철저히 농락당했던 셈이다. GPT3 모델의 두려운 점은 인간처럼 대답한다가 아니라 인간인 척 대답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인공지능 커뮤니티에는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 기술을 사용함에 있어 분명히 그 원리를 이해하는 성인만 사용해야 하며, 사용 시 경고문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게시되기도 한다. 전 구글 연구원 팀닛 게브루(Timnit Gebru) GPT3를 "확률적 앵무새"라고 명명했고,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Geometric Intelligence의 창립자인 게리 마커스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블로비에이터”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앵무이자 블로비에이터가 인간처럼 말하기 때문에 인간 사용자가 종종 속고, 동시에 자신의 문화적 유전자의 계승을 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쟁이에게 맡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0대들이 학교 과제에 이와 같은 거대언어모델 기반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경우 어떤 혼란이 일어날지 상상해보자. *블로비에이션: 때가 허락하는 한 길게 말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기원한 정치적 연설 스타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