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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유재석이 신인상이라고요?

  • 편집부
  • 2022-03-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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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네? 유재석이 신인상이라고요?

부(副)캐 전성시대, 유산슬과 페르소나

2019년 겨울, 연말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죠. 바로 국민 MC 유재석이 데뷔 29년 만에 연예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유재석이라도 그렇지, 1991년에 데뷔한 중견 개그맨에게 신인상이라니요?

 

그런데, 유재석이 들어 올린 트로피에는 전혀 낯선 이름이 적혀있었어요. 그 트로피는 국민 MC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화려한 반짝이 옷을 좋아하는 신인 트로트 아이돌, 유산슬을 위한 것이었죠.

 

바로, '부캐'에 대한 사회적 공인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부캐 전성시대」

 

지난 몇 년간의 콘텐츠 시장은 부(副)캐들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개그우먼 김신영의 부캐 둘째 이모 김다비, 최준(개그맨 이해준)과 매드 몬스터(개그맨 이창호 & 곽범) 등. 본캐보다 더 잘 나가는 부캐들이 넘쳐났죠.

 

이러한 흐름에 맞춰 크고 작은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에서도 부캐들이 등장했어요. 빙그레가 선보인 병맛 마케팅의 진수 빙그레우스가 대표적이죠.

 

물론 지금까지도 기업 마케팅을 위한 마스코트나 대표 캐릭터는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부캐는 단순한 캐릭터와는 달라요. 그들에게는 본캐와는 무관한, 자신만의 서사적인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는 이러한 현상을 「멀티 페르소나」라는 용어로 규정했어요. 페르소나는 그리스 어로 '가면'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양한 가면을 때와 상황에 맞춰 바꿔 쓰는 것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활동한다는 뜻이에요. 그게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든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든 말이죠.

 

대중은 페르소나의 변주에 열광했습니다. 펭수의 정체를 알기를 거부하고, 유산슬의 수상에 환호했죠. 가면 놀이를 하듯, 인플루언서들의 변신 자체를 즐기면서 말이에요.

 

아무도 "저 사람 유재석 아니야? 왜 저러고 있어?" 하며 딴지를 걸지 않습니다.

 

또, 남몰래 변신을 꿈꾸던 대중들은 김다비와 유산슬을 보고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SNS 계정을 여러 개 개설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어가기도 하고, 00 하는 은행원, 00 하는 마케터처럼 자신만의 정체성을 재창조하죠.

 

더 이상 멀티 페르소나는 연예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칼 융과 페르소나」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멀티 페르소나」라는 말은 동어반복일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라는 개념은 원래 '다중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르소나라는 심리적 정의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프 융이 재창했습니다. 프로이트의 둘도 없는 동료이자 정신분석의 선구자인 그는 사람의 의식은 페르소나와 그림자로 구성됐다고 생각했어요. 

 

페르소나는 도덕과 질서, 의무와 같은 사회적 요구에 의해 형성되는 심리적 가면입니다. 그림자는 페르소나의 반대급부죠. 이 가면은 어렸을 적부터 부모의 훈육, 정규 교육,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페르소나는 그 사람의 본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성과 대립하고 대결하기도 합니다. 에 따르면 페르소나의 지나친 팽창은 본성을 억압하며, 이는 수많은 정신장애의 원인이 됩니다.

 

또, 페르소나는 하나일 수 없어요. 일반적으로 성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은 아주 많기 때문에,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각기 다른 가면이 존재해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과거부터 존재했던 페르소나가 왜 최근에 들어서야 '부캐'의 모습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냐는 것입니다. 원래 '가면'이라는 것은 사회적 맥락에 적합하지 않은 자신의 본성을 연기하기 위한 장치인데 말이죠.

 

우선 현대에 들어서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개인에게 요구되는 페르소나가 많아졌습니다. 구조와 문화가 경직되어 있던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아버지나 장녀 같은 가정 내의 위치, 혹은 직급 같은 몇몇의 핵심적인 가면이 대부분의 일상을 관장했습니다.

 

그 말은 곧 다른 페르소나나 본성이 특정한 핵심적인 가면에 강하게 억눌려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난 장남, 장녀이니까, 가장 혹은 엄마니까,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공동체의 다변화와 탈권위적인 흐름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허용하고, 또 요구했습니다. 이를테면 직장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였더라도 가정에서는 다정한 아버지이기를 원하게 된 것이죠.

또, SNS의 발달 역시 부캐 시대의 크리티컬 한 요인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페르소나들의 충돌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아, 다른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다." 하는 욕구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마음은 타인들의 시선과 권위에 의해 억압되었겠죠.

 

하지만 SNS 공간의 폭발적인 발전은 가지각색의 페르소나들의 전시공간을 제공함으로, 타인들의 욕구와 자신의 욕구가 발산될 수 있는 창구가 되었습니다. 

 

내 안의 수많은 페르소나와 그림자가 산재하며, 타인들 역시 그렇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다양한 페르소나의 자유로운 발산은 분명 긍정적인 전환입니다. 가면은 결코 본성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과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가면의 과도한 팽창과 억압 역시 다른 페르소나로의 유기적인 전환으로 방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또 부캐 열풍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닐 확률이 높아요.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양한 가면과 그림자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은 말이죠. 오히려 앞으로는 부캐와 본캐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캐릭터를 몇 개 씩이나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요. 매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죠.

 

그러니 남들에게는 말 못 한 마음속 부캐가 있다면, 이제 망설이지 말고 새로운 SNS 계정을 하나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그곳에서나마 부캐로 한번 살아보는 거죠. 

 

유산슬과 김다비 이모처럼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편집부 superc@super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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