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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MZ, 사르트르

  • 편집부
  • 2022-03-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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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세상은 나의 선택으로 만든다

세계최초의 MZ, 사르트르

 

햇볕이 따듯하던 어느 오후, 유독 키가 작은 남자 한 명이 앳된 여인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느릿하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이제 내 거요.”     

      

카리스마 넘치네요. 그런데 이 달콤한 멘트, 사실 평범한 사랑고백이 아니었어요. 남자가 여인에게 제안한 것은 바로「계약결혼」이었습니다. 아니, 결혼에 계약이라니요?          

결혼생활 동안 서로 다른 상대와 사랑에 빠져도 간섭하지 않으며, 다만 외도 사실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통지한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이후 합의하에 재계약한다.

와우. 너무 쿨한 것 아닌가요? 해외 토픽에 나오는 할리우드 스타의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이 충격적인 고백, 무려 100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믿으시겠나요?

 

이 바람둥이 남자의 정체, 바로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이자 자유의 아이콘, 장 폴 사르트르입니다.

갑자기 옛날 철학자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사실, 오늘 뉴스레터의 주제가 바로 MZ세대와 실존주의의 연관성이거든요.

 

언뜻 보면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공통점이 많습니다. 유사한 환경에서 탄생했고,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해요.

 

어쩌면 MZ의 세계관은 알게 모르게 실존주의 철학에 기대 서있는지도 모르죠. 

 

무슨 이야기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밀레니얼과 Z     

 

「인플루언서블 세대」라는 말, 들어보셨을 거예요. Influenceable(영향력 있는)과 世代(세대)의 합성어로, SNS의 영향력을 알고 직접 행동해 변화를 만드는 MZ세대, 그중에서도 특히 Z세대를 가리키는 용어예요.

   

대학 내일 20대 연구소는「인플루언서블 세대」를 MZ세대 대표 트렌드 키워드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sns의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한 이들은 개인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고, 또 활용합니다. 꼭 수많은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스타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대표적으로 이들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위한 부케 챌린지나 감자 포켓팅과 같은, 일명 ‘선한 오지랖 콘텐츠’를 생산함으로 기업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타성과 관성으로 수동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게 아닌, 공동체 속의 오롯한 주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말이죠.

이런 인식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회의 중대한 변혁이 일어나기까지는 알게 모르게 차근차근 쌓여온 과정과 맥락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주도적 결정과 행동이죠. 권위주의적 관습과 공동체의 공동목표가 개인의 존재 이유를 설정하던 이전의 세대들과는 달리, 이들은 사회적 당위(當爲)를 거부합니다. 자신이 직접 판단하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해요.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권위의 붕괴가 있었어요. 바로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저성장 시대에 돌입하면서, 또 개인을 책임지는 조직이라는 개념이 흔들리면서, 사회의 총체적인 불안정성은 증가했습니다. 

 

지속적인 혼란과 불안은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낳게 되죠.     

 

“아니, 아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데, 왜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해?”

 

실존주의 철학 역시 마찬가지예요. 사르트르의 대표작인 「존재와 무」는 세계 2차 대전 도중에 발표됐어요. 저서에서 그는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관습, 도덕, 종교와 같이 ‘원래 주어진 것’ 없이, 우리는 그 본질부터 자유로운 존재라고요. 때문에 인간은 주체적으로 결단하고, 그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전쟁으로 무너진 사회 시스템 속에 혼란을 겪던 사람들의 깊은 공감을 끌어냈어요. 기존의 종교나 합리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이성 혹은 선(善)이 있다면 세계대전 같은 무의미한 총체적 폭력은 설명되지 않았으니까요. 

 

1900년대 서구사회의 시민들이 전쟁으로 인해 공동체라는 안정감을 잃었다면,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그것을 잃은 것이죠.     

가치관의 세대교체     

 

 

전쟁이나 경제위기 같은 고도의 불안정성으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게 됩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바로 그때 등장한 것이죠. 우리는 원래 주체적인 존재들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결단과 행동으로 삶을 지탱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저성장, 심화되는 양극화, 극심한 취업난과 같은 불안정 속의 「인플루언서블 세대」들 역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개개인 모두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SNS의 힘을 이용해서 말이죠.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도덕적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개인이 직접 행동하고 변화를 만들어나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에코 생활 브이로그를 제작하고, 투표 인증샷을 업로드하며, ‘미닝 아웃’과 같은 의미 소비 운동을 통해 신념을 표출합니다. 주체적인 개인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르트르가 사망한 이후 실존주의의 영향력은 약해졌지만, 주도적인 결단과 책임이라는 질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대적 차이와 공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대한민국과 전후의 프랑스가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정할 수 없지만, 인간은 혼란과 불안을 기피하고 지속 가능한 연대와 공동선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고 말했습니다.     

 

만연한 대립과 불신을 넘어 우리의 주체적 선택으로 만들어갈 세계, 한 번쯤은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편집부 superc@super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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