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새아'로 살아가는 엄새아씨는 어려서부터 콘텐츠 만드는 일을 즐겼다. 여행 또한 사랑했다. 그런 그에게 여행 크리에이터는 운명 같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매일 맑은 날씨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여행이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워라밸에 대한 고민은 더욱더 커졌다. 취미이자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것. 크리에이터에겐 어떤 의미일까.
오늘 촬영을 통해 어떤 모습을 남기고 싶으셨나요?
여행 크리에이터 해피새아와 엄새아의 모습을 함께 기록하고 싶었어요. 일단 원피스는 잡지의 주제인 여행을 생각하고, 여행지와 어울리는 패터너블한 옷으로 준비했는데요. 콘텐츠 속의 해피새아가 '샤랄라'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해피새아다운, 해피새아스러운 모습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검은 블라우스는 공항룩이에요(웃음). 평소에 비행기를 탈 때는 맨투맨이나 셔츠를 많이 입거든요. 약간 차이가 있죠.
그동안 사진을 찍히는 일을 하시다가 이제는 직접 찍고, 디렉팅까지 하고 계시잖아요. 직업으로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
모델 일을 할 때는 사진 찍히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피사체가 됐을 때는 현장에서 감당해야 할 부담감이 정말 컸거든요. 그런데 카메라를 직접 들어보니까 오히려 찍히는 일은 쉽게 느껴지더라고요.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그전에도 수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하지만 누가 더 낫다고 할 건 아니고, 각자의 몫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럼 찍히는 일, 찍는 일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어렵네요. 둘 다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재밌고요. 하나의 일을 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 다른 걸 하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 같아요.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여행 크리에이터에게 보릿고개가 찾아왔는데 새아님은 어떤 상반기를 보내셨나요?
사실 올해 정말 잘 될 줄 알았어요. 출장이 8월까지 꽉꽉 채워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좀 미리 쉬어야겠다 싶어서 1월 스케줄을 비워뒀는데 코로나19가 시작된 거죠. 2~4월에만 6개 출장이 취소됐어요. 기약 없이 취소한 일도 있고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곳도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도, 요즘 여행 업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서... 마케팅 비용을 들이기에는 어려운 상황일 것 같아요. 알고 지내던 여행사 직원도 '이제부터 해피새아님을 담당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하시기도 했고. 잡을 잃은 분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다른 분들은 휴가를 내서 여행을 가는데, 해피새아님은 여행을 못 가서 휴가가 찾아온 셈이네요
그렇죠. 그래서 올해 상반기에는 나름대로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작년에 결혼했는데 아직도 신혼집 정리를 못해서 일단은 신혼생활을 좀 즐겼고요. 좋아하는 게임도 많이 했습니다. 아! 그리고 에세이를 하나 썼어요. 조만간 출간됩니다. 꼭 어필해 주세요(웃음).
조금 무서운 말이지만 이런 상황이 올해만 있을 거란 보장은 없잖아요. 물리적으로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 이게 여행 크리에이터의 단점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여행 크리에이터를 시작할 때 '강산은 100년 동안 바뀌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유행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지만 로마의 유적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여행 크리에이터로 일하면 굴곡 없이 계속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저는 유튜브에 올릴 수 있는 영상 소스는 많이 갖고 있거든요.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서 3년 치 분량을 찍어뒀어요. 그런데 그걸 채널에 업로드하는 것도 죄송스러워서, 잔뜩 웅크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행 크리에이터가 '워라밸'이 잘 맞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저도 예전에는 다른 분들처럼 휴가를 쓰고, 비용을 들여 여행을 해왔어요. 그런데 여행이 너무 좋고, 계속하고 싶어서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기 위해 크리에이터가 되기로 결심했거든요. 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는 않아요. 물론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일은 일이거든요. 스케줄이 빡빡할 때는 한 달에 세 번 정도 여행을 갔는데 캐리어를 푼 적이 없고요. 그나마 계절이 똑같은 지역끼리는 괜찮은데 봄인 여행지에 갔다가 겨울인 곳으로 넘어가면 생체 리듬도 흔들리죠. 시차 적응 때문에 수면제를 달고 산 적도 있었어요. 주변 여행 크리에이터 이야기를 들어봐도 수두 때문에 입원하는 분도 있었고요. 또 일하는 스타일에 따라 다를 것 같긴 한데. 저는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한 편이에요. 아무래도 정해진 시간 내에 촬영을 마쳐야 하니까 일에 집중하고 있고, 촬영 용이 아니면 밥도 안 먹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오히려 일반 직장인보다 워라밸이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기보다는 여행 크리에이터가 마냥 편하게 돈을 벌고, 다니고 싶은 곳을 다 가는 핑크빛 직업은 아니라는 거죠. 사실 모든 직업에는 장단점이 있잖아요.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견딜 수 있었던 일인 것 같기는 해요. 요즘 코로나19로 발이 묶여있다 보니까 제가 불평했던 것들이 다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힘든 일들이 있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는 거겠죠?
맞아요. 계속 힘든 부분들을 말씀드렸지만 촬영 자체는 정말 즐거워요. 촬영할 때만큼은 일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거든요.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보여드리고, 더 많이 돌아다니고 싶으니까 몸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거고요. 오히려 예쁜 장소에 갔는데 카메라를 빼앗기면 안절부절못할 것 같아요.
여행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분이 '진로상담'을 해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지난 3월에 웹진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야기한 부분이지만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영상을 올리면 수만 명이 볼 거라고 예상했는데 몇백에 그치면 정말 하기 싫어지거든요. 그런데 몇백명만 봐도 좋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수만건까지 올라가면 다음 콘텐츠를 만들 에너지가 생기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재밌게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솔직한 심정으로는 유튜브 안에 더 많은 여행 크리에이터가 나타났으면 해요. 그래야 여행이라는 파이가 더 커지고, 다양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새아님이 유튜브에 첫 여행 콘텐츠를 게시한 지 5년이 흘렀어요.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 것 같으세요?
음... 살짝 찌들었다? 저는 그때와 지금의 MBTI가 다르거든요. 예전에는 ENFT(재기발랄한 활동가)였다면 지금은 ESTP(모험을 즐기는 사업가)로 바뀌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혼자 결정을 내려야 할 일들도 많아졌고, 그만큼 책임져야 할 것들도 생겼거든요. 또 외부에서 모르는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하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 안된다고도 강하게 말할 수 있어야 되니까 성격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이게 프리랜서의 숙제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10년 뒤의 새아님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꼭 여행이 주제가 아니더라도 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기는 해요. 여행을 하면서 미술,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10년 뒤에는 미디어와 텍스트를 재료로 사용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거든요. 미래의 제가 작품 활동이나 전시를 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위 인터뷰는 크리에이터 전문 매거진 '수퍼씨: 크리에이터 여행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편집부
peach@superbean.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