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디가 꿈꾸던 30살은 현실이 됐다.
20대의 현한수씨는 마음이 가는 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행을 삶에 녹여내며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뚜렷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막연히 그려냈던 잔상들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30대가 된 현한수씨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을 때, 20대 자신이 그리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닮아있다는 걸 발견했다.
수퍼C가 만난 현한수씨의 모습은 크리에이터의 정석이었다. 자신의 삶을 콘텐츠로 만들고 대학, 회사에서 배운 스킬과 미적 감각을 오롯이 발휘했으며 클라이언트와의 만남을 즐기고, 새로운 광고를 창작하기 위해 애썼다.
브로디의 상상은 결국 현실이 됐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브로디님, 수퍼C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 세계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사진과 영상을 찍고,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는 크리에이터 브로디(본명 현한수)라고 합니다.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출판사, 여행 스타트업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여행 크리에이터를 전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재료와 플랫폼을 이용하고 계신데, 하나씩 짚어주실 수 있나요?
블로그에는 사진과 글을 버무린 콘텐츠를 발행하고 있고, 네이버TV와 유튜브엔 여행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또 인스타그램에서는 초현실 아트워크 합성 작품을 게시합니다.
초현실 아트워크? 어떤 작업인가요?
말 그대로 '초현실적인 장면‘을 만드는 합성물이라고 보시면 돼요. 제가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있다거나, 달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만드는 거죠. 저만의 아이덴티티를 찾다가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녹여낼 수 있고 만들어놓고 보면 재밌고,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워서 이러한 작품을 만들게 됐어요. 또 여행이라는 게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꿈을 꾸게 하는 요소잖아요. 그래서 여행과 초현실이 접목되면 시너지가 클 것 같아서 쭉 이어오고 있어요.
브로디님은 '블로그'라는 플랫폼에서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하셨죠?
네. 대학생 때부터 운영했으니까 10년 정도 됐네요. 처음에는 대외 활동 내역을 올리는 공간이었고, 여행 전문 블로그가 된 건 4~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도 일상, 맛집 등등 많은 이야기를 다뤄요. 여행이라는 게 라이프스타일이 접목될 수 있는 분야다 보니까. 패션, 리뷰, 플레이스. 여러 가지를 녹여내기 좋죠. 그래서 선을 명확히 그어놓지는 않았어요.
유튜브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하셨는데요. 콘텐츠를 영상으로 확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호재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영화 줄거리를 짧게 말씀드리면 20대 청년 4명이 아주 적은 여비와 카메라 1대만 들고 무작정 유럽으로 떠난다는 내용인데요. 이 청년들의 목표가 각 숙박업소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무료 숙식을 제공받아 1년간 유럽을 일주하겠다는 거였어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냈고, 여행의 마무리도 정말 감동적이었거든요. 그때 마침 제가 유럽여행 계획이 있었는데, '나도 영상 아웃풋을 남겨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실제로도 영상을 찍어왔어요.
브로디의 첫 영상 콘텐츠,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영상을 열어봤는데 사진, 글과는 다르게 느껴졌어요. 조금 더 입체적인 기록이 가능하달까요? 영상에는 예쁜 순간뿐만 아니라 소음이라던가, 분위기 같은 게 여과 없이 담겨있고 그걸 대하는 내 표정도 솔직하게 기록돼 있었어요. 그래서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다 기억이 나니까, 콘텐츠를 만들기에는 굉장히 매력적인 재료라고 느꼈죠.
그렇게 채널을 열어 2년간 운영해오셨는데 아직 구독자가 1만명 정도, 아쉬움도 있으실 것 같아요
많이 아쉽죠. 구독자가 왜 이렇게 안 오를까요? 제가 진단하기에는 유튜브 채널 '브로디월드'는 전체적인 서사가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타채널을 보면 영상 하나를 보면 전 여행은 어땠는지,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됐는지, 여행의 시작과 끝이 어땠는지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주행을 하게 되는데 저는 뭔가 먹방 했다가 이거 했다가 중구난방이었던 거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일관성이 없었달까요? 그게 구독자 수에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사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잘 못했었는데 요즘 들어서야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채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계신 것 같은데,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운영하실 계획인가요?
최근에는 다른 여행 유튜버들과 만남을 갖고,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정답을 찾았죠. 그동안은 제 마음대로 했다면 이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정해서 가려고요. 나를 브랜딩 할 시기가 찾아왔고, 모든 준비가 된 느낌이거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 여행을 할 계획이에요.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고, 어떤 과정으로 부산에 도착했는지 그릴 수 있겠죠? 그러면 제가 생각했던 기승전결, 서사를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콘텐츠가 브로디월드의 새 장을 여는 출발점이 되겠죠.
수퍼C가 선택한 5명의 여행 크리에이터 중, 유일하게 MCN에 소속돼 있으세요
아 네, 그럴 거예요. 2020년부터 DIA TV 소속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DIA TV 내에도 여행 전문 크리에이터는 저 하나인 걸로 알고 있어요.
MCN과 계약을 맺게 된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
예전에도 여러 MCN에서 연락이 왔는데, 처음에는 좀 부정적이었어요. 수익도 나눠야 하고 내가 MCN 소속 크리에이터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DIA TV, CJ라는 네임밸류에 혹하긴 했어요. 제가 CJ를 참 좋아하거든요(웃음). DIA TV라는 거대한 MCN이 나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DIA TV를 통해 비즈니스적으로 도움이 되신다는 거죠?
그렇죠. 일단 MCN은 크리에이터에게 광고를 주니까요. 그게 사실상 제일 좋은 부분이에요. 근데 아무거나 주시지는 않고 크리에이터에게 맞춤형으로, 결이 맞는 것들로 주시니까 일거리를 확보할 수 있어요. 또 페이도 개인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MCN을 통해 들어오는 게 금액이 더 크더라고요. 구독자 수가 많은 대형 유튜버들은 공감 못하겠지만 저는 좀 절실하게 느껴요.
소속 크리에이터들 간의 네트워킹도 잘 되는 편인가요?
네.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전에는 소속 크리에이터들끼리 회식도 하고 주기적으로 봉사활동도 갔어요.
그런 자리에는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유튜버들도 오시겠네요
그렇죠. 박막례 할머니도 뵀었고. 트래블팀이 푸드팀과 묶여있어서 제 옆자리에 100만~2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먹방 유튜버분들이 앉아서 술도 마시고. 신기했죠. 그러면서 콘텐츠 고민도 같이 하고, 소속사가 있으니까 그런 네트워킹이 되는 거라 좋긴 좋더라고요.
채널 관리라던가,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조언을 받고 계시나요?
맞아요. 유튜브 로직이라는 게 사실 개인이 실험하기에는 너무 급변하고, 또 정확하지도 않아서 어렵거든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알게 된 부분을 크리에이터들에게 알려주니까 편리하죠. 유튜브 정책이나 저작권, 세금같이 예민한 것들도 세세히 알려주시고. 그런 부분은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브로디님은 MCN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네요?
저는 정말 만족하고 있어요.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게 MCN에서는 정말 여러 크리에이터를 관리하기 때문에 담당자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정보를 떠먹여주지는 않아요. 크리에이터 본인이 욕심을 갖고 담당자를 괴롭혀야 얻는 게 있죠. 연락도 계속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고. 그걸 담당자도 원하더라고요. MCN에 대해 불평하는 시선도 많지만 사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기는 해요.
현재는 전업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계신데,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저는 조직생활이 잘 맞는 편이었고, 회사와 관계도 좋았지만... 늘 내 일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한 기록이나 콘텐츠 발행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면 회사를 나오겠다고 결심했거든요. 어느 정도 목표를 이뤘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고요.
브로디님은 여행 크리에이터로서 몇 개의 나라를 다녀오셨나요?
32개국 정도 밖에 안돼요. 다른 여행 크리에이터에 비하면 적은 편이죠. 아프리카, 남미 지역 빼고는 거의 다 가보기는 했어요.
첫 여행지에 대한 기억, 어떻게 남아있나요?
저는 사실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좀 무서워했어요. 특히 해외여행이요. 공항에서 출입국을 하는 과정도 복잡하고,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여행을 할까 싶었거든요.
그러다가 2013년에 필리핀으로 가서 1년간 살게 됐어요. 그때 언어를 배우고, 지내다 보니까 두려움이 희석되더라고요.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할 수 있고, 버스 티켓을 산다거나... 어설픈 영어지만 생활이 되니까 여행에 대한 열망도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2014년에는 배낭여행을 떠났고, 그 이후부터는 여행에 푹 빠지게 됐죠.
여행지를 고를 때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는 편인가요?
일단은 티켓값이 싼 곳이요. 하하. 단기 여행은 비행기 티켓값이 저렴한 곳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그다음으로는 가고 싶은 곳, 가보지 못했던 곳이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각 여행지의 사진을 보면서 움직였던 것 같아요. 단순히 예쁜 장소라기보다는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미얀마 여행을 할 때도 사진을 보고, 너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훌쩍 떠났었고요. 미디어에 의해 결정한다고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 주제가 '브로디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잖아요. 20대에 브로디님이 상상했던 30대의 브로디, 얼마나 닮아있나요?
10대에는 미래의 모습을 그릴 때 구체적인 직업이라던가 위치, 이런 것을 상상했는데 20대 때는 '상태'에 대한 꿈을 꿨던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고 재밌어하는, 즐거운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 걸 생각해보면 상상이 현실이 된 건 확실하죠. 하지만 여전히 목은 마릅니다!
그렇다면 30대의 브로디는 어떤 상상을 하고 있나요?
후배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나 혼자 일을 하고 있지만 도움도 줄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합니다.
조금 더 이타적인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뜻이죠?
여행을 다니다 보니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힘겹게 살아가는 빈민층의 삶도 그랬고, 오염된 바다도 마음이 아팠어요. 또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고요. 이러한 부분을 녹여내 더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재미를 놓치진 않을 거예요.
* 위 인터뷰는 크리에이터 전문 매거진 '수퍼씨: 크리에이터 여행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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