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을 읽어보면 흔들리는 나무는 뿌리가 얕은, 유약한 식물처럼 느껴진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나무의 뿌리는 처음부터 단단했을까? 그렇지 않다. 흔들림이 있었기에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끝없이 흔들린다. 안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바깥에서 부딪히는 파도 등 크고 작은 자극에 쉼 없이 일렁인다. 때로는 흔들림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아픔이 가실 때쯤에는 더 깊고,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흔들림은 성장의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청년을 노래한다'에 참여하는 아티스트 피움은 이러한 내면의 움직임과 흔들림에 집중해 멜로디, 가사를 써 내려가는 싱어송라이터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세상을 알아가는 청년의 이야기. 무엇이 그의 마음을 울렁대게 했을까. 또 고민 끝에 피워낸 꽃은 어떤 색일까.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피움님. 수퍼C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기타 치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피움'입니다. 피움이라는 활동명은 꽃을 피우거나 불을 피우는 것처럼 무언가가 시작되고 발화된다는 의미를 담아 지었어요. 저는 소리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조용하고 잔잔한 것에서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의식하는 사이, 혹은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가사로 쓰고 있고요. 물의 흐름, 바람이 일으키는 움직임, 산 등을 보며 곡을 쓰고 있습니다.
굉장히 섬세한 감성을 지니신 분 같은데, 어떤 곡을 쓰셨는지 궁금해요
'내가 왜 널 잃어버렸을까'라는 곡을 소개하고 싶어요. 이 노래는 지금보다 더 철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그때는 사람 관계가 틀어지면 안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연을 끊고 그랬어요. 마음 상한 걸 이야기하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 입을 닫는 일도 많았죠. 그런데 많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하지 못했던 말이 나를 상처 입히고 있었고, 친구는 어쨌든 소중한 존재인지라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 시절 어리석음에 대한 변명이자 사과가 담긴 곡이에요.
또 '소실점'이라는 노래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장 최근에 발매한 곡인데요. 일렉기타 사운드가 아주 매력적이에요. 앨범 커버도 세 번째 같이 하고 있는 작가님과 작업했는데 정말 마음에 들고요. 꼭 들어보세요.
피움님은 언제부터 거리로 나와 노래를 하셨나요?
어느 순간부터 라이브 클럽 관객이 3~4명 정도로 줄어들면서 하나둘씩 문 닫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노래를 듣는 클럽보다는 춤추는 클럽을 선호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카페인데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든지 홍대 놀이터 버스킹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버스킹 공연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정말 정말 더운 날, 홍대 놀이터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객석에 앉아계신 분들도 공연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그늘에 앉아 계셨는데, 별로 관심을 안 주시더라고요. 그냥 내 노래하고 가자는 마음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공연을 마쳤는데... 박스에 평소보다 2~3배나 많은 팁이 들어있었어요. 정말 의외였죠. 다들 보고 듣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어요. 또 제주도에서 살 때 보롬왓이라는 곳에서 공연했을 때도 좋았어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거든요. 잔디밭에 앉으면 멀리 오름이 보이고 하늘은 새파랗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그리운 풍경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은 무대가 사라졌는데, 어떤 상반기를 보내셨나요?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작년에 9달 정도 제주에 내려가 있었어요. 일도 하고 공연도 하고, 제주라는 섬에 흠뻑 빠져 있었죠. 더 머물고 싶고 아예 정착까지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동료들이 다 서울에 있고, 음악 하기에는 올라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설날 즈음에 육지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때 딱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두 달 정도를 집에서만 보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작업실을 구하고, 동료들을 만나 미뤄뒀던 작업을 시작했죠. 그 결실로 6월 초엔 소실점이라는 음원을 발매할 수 있었고요.
청년을 노래한다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셨나요?
코로나19 사태로 저를 비롯해 많은 음악인들이 무대를 잃고,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어요. 국가에서 프리랜서 예술인 지원 사업을 진행해도 내용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고요. 그런데 경기문화재단에서 공연도 할 수 있고 공연비도 받을 수 있는 사업을 연다고 해서 열심히 지원서를 썼답니다.
이번 무대를 통해서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실 건가요?
일단 제 이야기가 담긴 곡들을 많이 들려드리고 싶어요. 제 노래들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것이 많지만... 가사를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기 좋은 노래들이라고 생각해요. 스킬을 뽐내기보다는 감성을 공유하고 싶어요.
피움님의 플레이리스트 중, 꼭 추천하고 싶은 노래는 무엇인가요?
George Benson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에요. 요즘 노래는 아니지만 정말 좋아하는 곡이에요. 힘들 때마다 한 번씩 들어서 보약이라고 부르는 노래기도 해요. 목소리, 가사, 멜로디가 저에게 힘을 주거든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기운이 나고 마음에 사랑이 가득 채워져요.
남은 2020년은 어떤 창작 활동을 이어가실 계획인가요?
연말까지 5곡 정도를 발표하는 게 목표고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유튜브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올해 가까운 지인 중에 아픈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도 목 디스크로 고생하면서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모두 건강하시고 비 피해 없으시길 바라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 필요한 말이 '힘내'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어떨 때는 힘내라는 말이 강요처럼 느껴져서 싫더라고요. 지금은 '버티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힘든거 다 아니까 더 잘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그 자리에 있자고. 포기하지 말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