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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작가 '간절한 마음 지닌 창작자, 현실의 벽 뛰넘을 것'

  • 황인솔 기자
  • 2020-08-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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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상을 깊게 사랑하면 가슴에 '불덩이'가 느껴진다고 하죠. 직장에 나와 일을 하더라도 생각이 떠나질 않고, 밤이 깊어도 잠들 수 없는 열기를 주는 존재. 여러분의 마음엔 어떤 불씨가 살아 숨 쉬고 있나요?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은 자신의 꿈과 열정을 위해 16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는 작가로 전향한 정진호님입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개발자로 일했지만 '그림을 평생 그리고 싶다'라는 창작욕으로 새 출발을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수채화 등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비주얼씽킹', '디지털드로잉', '벡터드로잉'으로 캔버스를 넓혀가고 있는 정진호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후학들을 위한 강의를 열고 책도 펴내고 계신데요. 그림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창작을 하고 계신지 물어봤습니다.


SUPER MIC
VOL. 15
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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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비주얼스쿨 대표이자 '그림 그리는 공학도' 정진호 작가 [사진= 정진호 제공]

수퍼C | 안녕하세요 정진호 작가님!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진호입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16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지금은 1인 기업 'J비주얼스쿨'을 6년째 운영 중입니다. 또한 독학으로 9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고, 수채화 개인전을 7번 열었습니다.

수퍼C | '그림 그리는 공학도'라는 별칭이 있으신데, 그림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예전에 글로벌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할 때 1년에 1~2번은 해외 출장을 갔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정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서, 작은 스케치북에 비행기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또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 지금이 아니면 언제 도전할 수 있겠냐는 생각에 스케치북 한 권과 검정 펜 한 자루를 가지고 매일 밤 그리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정진호 작가의 드로잉,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펜을 놓지 않는다

수퍼C | 16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과감하게 퇴사하셨는데, 새로운 시작이 두렵진 않으셨는지

이제는 더 이상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살다 보면 2~3차례 자신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됩니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죠. 물론 저 역시 새로운 시작이 두렵기는 했지만, 다행히 운이 좋아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퍼C | 개발과 그림, 관심사에서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데 두 분야의 비슷한 점을 찾자면

개발은 특정한 기능을 가능한 짧은 코드로, 버그 없이, 빠르게 동작하는 것이 좋은 방향이죠. 제가 공대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림에도 그 방향이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은 누구나 적당한 도구와 방법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연습하면 일정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수업을 듣는 분들의 상당수가 자신의 작품에 큰 만족을 느끼셨고요.

▲ 정진호 작가의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2019)',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날 딸의 모습을 작게 그려 넣었다

수퍼C | 작가님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란 어떤 의미를 갖나요?

그냥 재미가 있었습니다. 매일 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리고, 이것을 완성하고 서명을 하면 너무나 큰 만족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죠.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하면 잘 그릴까'를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재미있는 것을 평생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죠. 저에게 있어서 그리는 행위는 평생 하고 싶은, 재미있는 취미입니다.

수퍼C | 그동안 작업하셨던 것 중 가장 좋아하는, 또는 의미 있는 그림을 소개한다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2019년에 작업한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입니다. 이곳을 여행할 대학생 딸을 생각하면서 그렸고요. 작품 속에 아주 작게 딸아이가 있어요. 이 엽서를 들고 아이는 인증 사진을 찍어 왔고, 별 탈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쳤습니다.

▲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정진호 작가의 딸, 아버지의 그림을 들고 찍은 인증사진을 보내왔다

수퍼C | 현재 대표를 역임 중인 J비주얼스쿨은 어떤 회사인가요?

제가 6년째 운영 중인 1인 기업입니다. 비주얼씽킹과 마인드맵을 이용한 '생각 정리 워크숍'과 비전공자를 위한 그림 수업인 '행복화실'을 열고 있습니다.

수퍼C | 비주얼씽킹? 저에겐 생소한 개념인데, 설명 부탁드려요

비주얼씽킹이라는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쉽게 말하면 간단한 그림과 글을 함께 이용해 정보를 정리, 요약,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외국에서는 종종 'Sketch Note', 'Graphic Summary'라는 용어도 사용하는데 모두 비슷한 의미입니다.

수퍼C | 그렇다면 비주얼씽킹을 배우는 게 어떤 도움이 되나요?

글과 그림을 동시에 사용해 정보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기술은 어린이, 학생, 직장인 등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더 쉽게 이해하고,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죠.

▲ 글과 그림을 이용하는 '비주얼씽킹', 개발자의 생각 방식과 드로잉이 더해진 기술은 정진호 작가에게 꼭 맞았다

수퍼C | 사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사람은 '정보의 시각화'라는 개념이 어려울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주얼씽킹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글씨를 잘 못쓴다고 해서 문맹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해서 비주얼씽킹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주얼씽킹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 기호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죠.  즉, 멋있고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시각적 기호를 이용하는 것이 비주얼씽킹의 핵심입니다.

수퍼C | 그렇다면 비주얼씽킹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학생은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배울 때 글과 그림을 함께 이용해 정보를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죠.  또한 마케터, 기획자 같은 직장인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모든 분야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 '세바시' 403회에 출연한 정진호 작가, 비주얼씽킹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수퍼C | 지금까지 여러 권의 도서를 쓰셨는데, 어떤 책들인지 간략한 설명 부탁드려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16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습니다. 예전 책들은 대부분 개발 서적이고, 최근에는 주로 그림을 주제로 하는 책들을 썼습니다.

'철들고 그림 그리다'는 18개월 동안 매일 그림을 그리며 그림이 주는 행복의 의미를 발견한 직장인의 이야기입니다. '정진호의 비주얼씽킹'은 글과 그림으로 생각과 정보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요약하는 기술을 설명합니다. '행복화실'은 라인 드로잉, 색연필, 수채화를 혼자 배울 수 있도록 12주 과정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수퍼C | 3월 말에는 '똥손 탈출 100일 100드로잉'이라는 신간을 내셨어요, 이번 책에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이번 책은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 100일 동안 100장의 그림을 함께 그리는 책입니다. 이제는 어느 집에나 한 대씩은 있는 PC, 스마트폰, 태블릿과 무료 프로그램인 'AUTODESK Sketchbook'을 이용해 100가지 주제로 누구나 쉽게 그림을 따라 그리는 책입니다.

수퍼C | 이번 책을 펴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어떤 것인가요?

잘 그리는 것보다 그림을 완성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일부러 고급 기술은 담지 않고, 난이도를 낮춰봤는데요. 독자들이 볼 때 "이 정도쯤이야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 똥손 탈출 100일 100드로잉, 정진호 지음, 제이펍 출판, 2020년 3월 24일 발간, 280쪽

수퍼C | 책 안에 100일간의 커리큘럼이 담겨있는데, 마지막 장을 그릴 때쯤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00일 전보다는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익숙해질 거예요. 물론 생각보다 실력이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자신이 100일 동안 그림을 꾸준히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고, 100장의 작품이 남을 겁니다.

수퍼C | 출시된 디지털 장비가 너무 많은데, 드로잉 꿈나무들은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할까요?

너무 비싸고 고급 제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주변에 있는 도구를 최대한 활용해서 작업해 보고 화면이 너무 작거나 느리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더 좋은 제품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 20개 정도는 지금 가진 장비로 작업을 해 보세요.

▲ 100일 100드로잉 80일차에서는 트레이싱 기법을 사용한 자화상 그리기를 배울 수 있다

수퍼C | 지금까지 펴낸 책들을 보면 '그림을 시작하게 된 이유', '비주얼씽킹의 개념', '비주얼씽킹 시작하기'와 같이 시리즈로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음 도서를 펴낼 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손으로 작업하는 비주얼씽킹과 수채화를 오랫동안 그리다가 좀 더 영역을 넓혀 디지털 드로잉을 하던 와중에, 운 좋게 좋은 출판사를 만나 '똥손 탈출 100일 100드로잉'을 출간하게 됐는데요.

작업을 하다 보니 아이패드를 이용한 벡터 드로잉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기존의 벡터 드로잉은 Adobe Illustrator라는 제품이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는데, 배우기가 무척 힘들어서 포기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Affinity Designer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습니다. 기능도 훌륭하고, 배우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해서 많은 사람이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똥손을 위한 벡터 드로잉'에 대해 써보고 싶네요. 온라인 강의도 좋고요.

수퍼C | '똥손 탈출 100일 100드로잉' 독자들에게, 책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하지만 조바심을 내면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고 오래가지 못합니다. 잘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말고, 하루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 도전해보세요. 매일매일 작은 성공을 이루는 즐거움을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잘 그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라는 걸 알게 되고, 꾸준함이 계속되면 결국 잘 그리게 될 겁니다.

▲ 정진호 작가 개인전에 전시된 '티볼리공원(2018, 종이에 수채)'

수퍼C | 작가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미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꿈이 있는데 죽기 전에 30번의 개인전과 30권의 책을 내는 것입니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조금씩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가야죠.

수퍼C | 꿈이 있지만 직장, 현실에 붙잡혀 도전하지 못하는 분들께 한 마디 해주신다면

누구나 꿈은 있죠. 다만 이것이 머릿속에만 있냐, 직접 실행을 해보냐의 차이는 간절함인 것 같아요. 간절함이 충분히 크면 현실의 장애를 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당장 현실에 묶여 있더라도 어느 순간 기회가 찾아올 수 있으니 너무 자책하거나 꿈을 버리지는 마세요. 저도 40살 이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재미가 있고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있습니다.

▲ 정진호 작가의 '할슈타트(2019, 종이에 수채)'

수퍼C | 창작을 위해 힘쓰는 수퍼C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때로는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자책하지 마시고, 우리는 모두가 좋은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구에 온 사람들이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크리에이터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작품을 만들어 낼 겁니다.

수퍼C |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신간 '똥손 탈출 100일 100드로잉' 많은 사랑 부탁드리고 이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100일 동안 그리기에 도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번 구경해 보세요. 고맙습니다.

황인솔 기자 puertea@superbean.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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